직장생활 에세이

비전공자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살아남기 : 1. 각성

LIama 2024. 6. 24. 07:05

 

데이터 분석가로서 첫 3년은 적응과 공부(통계, 도메인 지식 등) 그리고 고객사 만족시키기의 연속이었다. 데이터로 고객사를 만족시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예시를 통해 설명해보겠다.

고객: "분석해주신 것 잘 봤습니다. 그런데 저희 내부 해석과는 좀 다르네요. 저희 해석에 맞춰서 다시 분석 가능할까요?"
분석가: "(???)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맞춰서 다시 분석 결과를 전달한 후

고객: "아... 저희가 말한 그대로 결과가 나오길 바란 건 아닌데요. 저희보다 경험 많은 A사의 전문적인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분석가: "(???) ..."

 

이 예시는 화자의 직간접 경험을 기반으로 재해석된 내용이다. 사실 업무에서 명시적으로 본인들의 해석에 맞춰달라고 하는 일은 없다. 다만, 돌려서 이야기한 내용을 해석하면 80%의 확률로 이런 결과가 나온다. 이런 요구가 3년째 계속되다 보니 현타가 왔다. 분석 전문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맞춰주는 집사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분석 보고서의 피드백으로 "폰트 크기 몇으로 맞춰주시고 폰트는 뭘 사용해주세요."라는 요청이 오면 허탈감이 몰려왔다. 내용은 보고 있는지, 이 결과물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데이터 분석은 종합 예술이다. 도메인 지식을 파악해야 하고, 지표들의 관계성부터 당시의 사회 경제적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읽는 사람이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전혀 모른다는 점은 큰 고통이었다. 4년 차가 되어가던 무렵, 번아웃에 빠진 나에게 같은 회사 개발자가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OO님, python이랑 sql 배워 볼래요?

 

당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는 직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 직무를 위해 Python과 SQL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코딩 언어를 배워본 적이 없어서 '문과가 감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볍게 배워보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하는 데 유용할 것 같아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print('hello world')부터 시작해서 *로 피라미드 그리기 등을 통해 Python 기초를 훑었다. 컴퓨터와의 대화는 결과가 확실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당시 고객을 '독심술' 하느라 지쳐 있던 나에게는 단비 같은 시간이었다. 조금씩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배워서 나쁠 것 없지" -> "정말 잘 사용하고 싶다"로 마음이 변했다. 그리고 태만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함께 일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 모델 내가 만들면 안 되나? 내가 만들고 검수도 자동화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렇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의 직무 변동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델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기본적인 통계나 수학은 계속 공부해왔기 때문에 기본적인 수식을 짜는 게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자동 검수가 까다로웠다. 그래도 모델 데이터 전처리부터 검수까지의 과정을 모두 개발하고 팀원들에게 대대적인 런칭쇼를 진행했다.

 

이 부분이 당시 팀장님에게 좋게 보였던 것 같다. 이전에는 모델 결과가 학습할 때마다 틀어졌고, 검수하는 데 긴 시간과 많은 인력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모두 이 업무를 기피했다. 그러나 그런 업무를 코드 한 번에 해결해버렸으니 팀장님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다. 그렇게 나는 팀의 주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직무 이동이 되었다.

 

이게 바로 운명..?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마침 동료 개발자가 코딩 수업을 해주었고, 태만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프로젝트를 함께 했으며, 그로 인해 팀원들이 고통받고 있었고, 개발한 머신러닝 파이프라인이 쓸만했다. 또한, 당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는 직무가 조금씩 뜨기 시작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주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귀했다. 그래서 회사 내부에서는 데이터에 대한 지식도 있고 분석도 할 줄 아는 내가 좋은 옵션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