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인생 서평_ 내 생의 두근거림을 기억하며
과거 김애란 작가의『침이 고인다』(문학과 지성사,2007)를 읽고 난 뒤, 난 김애란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자칫하면 재미없고 따분하고 어두워질 소재들을 작가 특유의 재치로 승화 시키는 모습이 특히나 인상깊었다. 그래서 김애란 작가가 쓴 첫 장편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는 순간, 그날로 서점에 가서 책을 사왔다.
이것은 가장 어린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 나와 있는 가장 마지막 문장이다. 그동안 작가의 단편소설들을 떠올려보면 대부분의 청년 주인공들은 본래의 나이에 비해 성숙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 난 이번 장편소설도 늘 단편에서 다뤄왔던 일상적인 가족들의 이야기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이 소설은 ‘조로증’에 걸려 80세의 얼굴을 하고 있는 17살의 아이와 17살에 아이를 가진 부모의 이야기이었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두근거리며 살아가는가?’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린 이 책의 질문이었다. 내 생에 두근거렸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지금 생각나는 거라고는 고작해야 수능을 보며 느꼈던 긴장의 두근거림과,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느끼는 두근거림이 전부였다. 나는 항상 인생의 두근거림을 느끼기보다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주위에서 사소하지만 나를 두근거리게 할 수 있는 요소들에 눈을 감아버렸다. 이런 이유로 지금 내 인생에서 두근거렸던 추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나와 있는 ‘작가의 말’을 다 읽고, 나는 어떤 슬픔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이는 단순히 주인공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두근거림에의 부재에서 나오는 슬픔이었다. 또한 두근거림을 느끼려고 조차 하지 않은 나의 모습에 대한 성찰의 슬픔이기도 했다.
주인공 ‘한아름’은 조로증에 걸려 하루를 1년 같이 살아가는 17세 소년이다. 원래대로 라면 그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며 하루를 보내고 첫사랑에 가슴아파하는 보통의 소년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학교보다는 병실에서 친구보다는 책과 어울리게 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항상 인생을 책으로 배웠고 또래보다 월등히 성숙해졌다. 아니, 나는 아름이가 풋사랑의 여자아이를 만나기 전까진 거의 어른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17세 아이답게 그는 첫사랑에 아파하고 고민하며 슬퍼했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며 난 아름이가 불쌍하다고 느끼기보다 부러웠다. 하루를 1년 같이 살기 때문에 그는 매사에 기억하고 추억하며 살았다. 마치 앞으로 살지 못할 날들의 기억 대신에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을 모조리 기억하고자 하는 듯, 자신이 겪었던 대부분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태아였던 자신의 기억마저도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해서 내가 태어날 때의 두근거림을 느낄 정도였다.
'보내기' 단추를 누르기 전, 모니터 속 문장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해야 할 말은 한 건지, 안해도 될 말을 쓴 건 아닌지 보고 또 봤다. '꽃에 관한 얘기는 뺄까?' 하지만 이미 아까운 문장을 많이 지운 뒤였다. 누가 봐도 명백한 구애, 명백한 노력처럼 보이는 표현은 안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어떤 여지 같은 것은 남기고 싶었다. 들키기 위해 숨어 있는 '틀린그림'처럼. (217쪽)
소설 속에 담겨있는 많은 이야기들은 나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특히 주인공이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며 좋아하는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고민하는 그 모습에 깊게 동감하였다.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에 이르기 까지 난 ‘한아름’이라는 주인공에 완전히 몰입했다. 이는 아마 내가 아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17살이 되고 사랑을 느끼고 죽을 때까지를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름이가 풋사랑에 두근거리고 혼란스러워 할 때에는 나도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두근거리고 혼란스러웠다. 특히 아름의 아버지 대수가 아름을 꼭 껴안을 때, 아름이가 느끼는 아버지의 심장소리는 나의 눈시울을 붉게 하였다.
내가 이럴 수 있었던 이유는 작가 특유가 독자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게 하는 필력이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나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늘 작품 속 캐릭터들에 공감하고 동감할 수 있었다. 아마 이는 김애란 작가가 다루는 인물들과 상황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두근두근 내 인생』은 조금은 달랐다. 주변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가족들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이번 장편소설을 호의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원로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혹평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작『달려라 아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만약 내가 저 단편소설집을 읽었다고 해서 내 감상이 달라졌을까? 나는 아마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름이 대수와 미라에게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보며 언뜻『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라는 김애란의 단편소설이 떠오르긴 한다. 또 곳곳에 장치되어 있는 유머들도 전작 소설들처럼 이 소설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장치들이 있었기에 독자들이 더욱 공감할 거리들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어렸을 때, ‘부모님들이 어떻게 만났는지’, ‘나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물어보곤 한다. 단지 주인공 아름이의 경우에는 이를 듣고 자신이 소설화 시켰다는 면이 다를 뿐이지 우리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을 표현한 것은 어찌 보면 아이다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소설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유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소설에 더욱 공감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다시피 대부분의 가정은 이 소설 속에 담겨져 있는 가족의 모습과는 많이 상이하기 때문에, 무겁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면 더욱 우리는 공감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유머가 우리를 웃게 하고 이로 인해 우리는 작품을 너무 무겁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게 된다.
물론 소설의 분위기를 약간 다운시켜 좀 더 불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과 슬픔을 더 진하게 담아내었다면, 더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두근거리기 보다는 그 가족들의 고통에 괴로워하기만 했을 것이다. 소설『두근두근 내 인생』의 가장 큰 질문이자 주제는 ‘당신은 인생을 두근거리며 살고 있습니까?’이니 말이다.
문득, 지난번 ‘안현미 시인' 의 강의를 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안현미 시인의 시들은 재치가 넘치며 그동안의 시들에선 볼 수 없었던 시들의 형태들이 인상 깊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날 안현미 시인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의 시를 평론하는 사람들은 내 시에 어떤 특징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혹평도 많이 받고 호평도 많이 받는다. 나는 내 시를 어떤 계열의 시로 묶어 놓고 싶지 않다. 왜냐면 시는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인이든 소설가는 자신의 시나 소설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떤 유형에도 계열에도 묶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김애란 작가도 다른 평론가들의 말에 휘둘려 자신의 스타일을 잃지 않고 그녀의 유머와 재치를 다음 소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에 줬으면 좋겠다. 다음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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